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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호 박사는 KIST 유일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다. 개원해 환자를 돌보는 대신 연구하는 길을 택했다. 현재 침치료를 통한 신경생물학적 기전과 별세포를 통한 각종 뇌질환 병리기전을 밝히는 등을 연구한다.한의학 기반 신경과학연구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가 신경과학에 뛰어든 이유는 소우주라고도 불리는 뇌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서다.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 알츠하이머의 경우 발견된지 110여년이 지났지만 정확한 발병기전과 원인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발병 후 완치가 아닌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에 초점이 맞춰 있다보니 환자 100명 중 1명을 치료하는 것도 어렵다. 초기 암 치료 확률 90%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확률이다.
남 박사는 "학문에는 벽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경계에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한다. 뇌의 비밀을 밝히는 것 역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힘을 합쳐야할 것"이라며 연구 계기를 설명했다.
◆ '별' 좋아하던 소년, '뇌 속 별' 연구하는 과학자되다
"천문학자가 꿈이었죠."
누구보다 뇌과학연구에 진심이지만 남 박사는 "어릴 적 꿈은 천문학자였다"고 털어놨다. 하늘의 별 보기를 좋아하던 그는 고등학생 때만해도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가 의사가 되길 바랐다. 남 박사는 부모님 권유에 수능에서 일정 점수 이상이 나오면 의대에 가겠다 제안했는데, 모의고사에서 지금껏 받아본 적 없는 높은 점수를 그해 수능에서 받았다.
"천문학은 글렀더라도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밝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의대에서 임상의학을 공부하며 즐거웠고 졸업할 즈음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했습니다. 한의사 중에서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싶었어요."
한의대 졸업 후 선후배들은 한의원을 개원하거나 임상 한의사가 됐다. 남 박사도 한 때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거나 환자를 진료하는 한의사의 미래를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환자를 돌보는 삶은 상상이 안됐다"고 말했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고팠던 그는 결국 연구를 택했다.
그는 경락(經絡)의 과학적 근거를 밝히는 연구팀에서 석사를 시작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뇌를 접했다. 생물학적으로 뇌를 공부하고 싶던 그는 신경과학을 전통적으로 하는 연구소에서 연구를 꿈꿨다. KIST와 인연은 여기서 시작됐다.
KIST에서 그는 침술과 뇌 속 별세포를 통한 신경과학적기전 및 연관성 등을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천문학자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하늘의 별 대신 뇌 속 별세포를 관찰하는 과학자가 됐다. 돌고 돌아 결국 연구자가 된 그는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토로한다. KIST입장에서는 신경과학 연구에 한의대생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고, 그 역시 생소한 분야에 콤플렉스를 갖기도 했다.
그는 "박사과정 첫 랩미팅을 잊을 수 없다. 영어를 할줄아는데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며 "한의대에서 생물학을 필수로 이수했지만 나에게 중요한게 아니라 생각해 소홀했던게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랩에서 지내며 후배들과 많이 대화하고 대학교 교과서를 보며 공부했다. 3~4년이 지나서야 연구에 대해 조금씩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한의학은 비과학적? 변화 위한 경계에서 필요한 연구할 것
한의학을 접하다보면 손가락 혹은 발가락이 특정 장기와 연관된다는 이야기를 흔하게 들을 수 있다. 한의학은 체표면과 장기의 연결 관점을 들여다보는 독특한 학문이다. 이에 그는 "한의학 자체가 신경과학연구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지식은 인체, 해부, 생리학, 병리학 관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장뇌축 이론(장내미생물을 매개로 장신경계와 중추신경계가 연결돼 상호작용한다는 이론)을 기반으로 유산균을 먹었을 때 뇌가 어떤 변화를 갖고, 파킨슨병이 맹장에서 시작된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도 나오고 있다.
그가 관심 갖는 침술연구도 마찬가지다.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뇌가 말초신경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반대개념은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그는 침술을 통한 말초신경 자극이 뇌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가능성 등을 규명해 새로운 의료연구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는 지난해 KIST 영펠로우에 선정, 관련 연구를 경희대 한의대와 공동연구 중이다. KIST영펠로우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와 연구그룹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KIST가 신진 연구자와 유망 연구그룹에 파격적인 지원을 하는 과제다.
그는 "침술을 통해 뇌염증이 주는 등 단편적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단편적인 연구가 많다. 우리는 어떤 경로로 신호가 전달되었는지, 분자적인 기전, 세포적인 기전 등을 밝혀보고 싶다"며 "침치료 기전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우리나라에도 많다. 나는 한의사이자 신경과학을 훈련받은 사람으로서 다각적인 시각에서 연구를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남 박사는 최근 선배인 류훈 박사, IBS, 연세대 등과 공동으로 반응성 별세포를 영상화해 관찰 및 진단할 수 있는 뇌신경 이미징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별 모양의 별세포는 우리 뇌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세포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뇌 염증을 동반하는데 이 때 가장 먼저 별세포의 크기와 기능이 변하는 반응성 별세포화가 관찰된다. 반응성 별세포는 임상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관찰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남 박사팀은 연구를 통해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이 임상실험에는 남 박사의 부친이 정상군 실험자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한 때는 의사가 되길 권유했던 아버지가 이제는 남 박사의 연구를 응원하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고 있다.
앞으로 남 박사는 별세포와 한의학을 기반으로 한 신경과학 연구에 더욱 몰입하고 싶다.
"일각에서는 한의학은 비과학적이고 연구가치가 없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감사하게도 주변에 계신 분들은 신경과학에 한의학을 연구대상으로 가치를 인정해주고, 힘을 합쳐 한의학의 연구신뢰성을 높이는데 힘을 보태주고 계십니다. 제 지도교수께서 역사는 변경에서 일어난다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 변경은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이 발전하기 위해서, 의학이 발전하기 위해 경계에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져야 실제 인류에 도움이 되는 의학이 되지 않을까요."
출처 : 헬로디디(http://www.hellodd.com)